[은교], 젊음 그리고 이적요 북북

요새 그런 생각을 한다, '젊음'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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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주로 영화-책-영화 이런 코스를 타는 듯 하다. 재밌다고 들어 그냥저냥 영화보고 약간의 아쉬움을 책으로 채우고, 책으로 충만해진 감성으로 영화를 보면 그 내용이 더 가슴에 와닿는걸 느낀다.
비록 은교를 2013년 10월초에 읽긴 했지만 메모를 해두어 살짝이라도 적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껴본다, 글 작성 날도 대충 그쯤으로 설정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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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를 보며 생각했다. 이적요가 진정 사랑했던건(은교를) '부성애'로써 였을까? 아니면 애로스적 사랑이었을까? 그 어느것도 간과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냐면 글 속에는 애로스적 성향을 타나냈지만 이적요의 일기 내용에서 가족같다는 표현에 조금은 흔들렸다. 
그리고 은교는 이적요에게 헤게모니적 사랑을 느낀걸까?

어쨌든 상관은 없지만 그 생각에 이어 자녀를 성폭행하는 부모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까 생각했다. 어떤 것이 부족해서 어린 딸에 욕구를 해소하려 하는걸까?
난 그런 것을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통념상 문제가 매우 중죄지만 딸도 헤게모니적 사랑을 느끼고 아버지도 그에 마찬가지라면 관계에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물론 문제가 되긴한다)

이 소설에서 문제점은 '은교가 이적요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는가'다.
이적요가 은교에 대한 마음이 미화된 까닭은 '이적요의 수수함', '이적요의 사회적 지위,성공' 등 주인공 시점 같은 이유임에 틀림없다. 소설 속 세간에서 거론될 이적요의 '사랑'은 그의 페니스와 관련될 일이지만 사실 그건 아니지 않은가. 공인이란 슬픈 것이다. 노인임에도 슬픈 것이고.
아무래도 존재 자체(남성과 여성임에)로 애로스적 사랑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어떠한 다른 종류의 사랑이 분명 있었다 위로의 생각을 조금은 해본다. 특히 은교를 품고싶지만 그럼으로써 얻게 되는 것은 일시적이라고 표현하는게 맘에 와닿았다.
더 좋았던 부분은 역시 젊음은 그들의 노력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 또 중요한 대목이었던 서지우 용역으로 은교남친을 대행했던 양아치의 대사가 가슴을 너무나도 아프게 했다. 마치 문학도(공인)가 연애를 조금이라도 '특이','특별'하게 한다면 대중이 갖게 될 인식을 보여주는 듯 해 그것에 더 슬펐다.
늙은 것에 대한 회의적 표현의 글들은 나의 가슴을 후벼팠다. 나는 젊은 노인이고 모든 노인들은 젊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 아 가슴아파.

은교는 정말 나와 맞는 책이다. 마치 [깊은 슬픔]을 최근에 봤던 것 처럼 영원히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은교]를 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이만한 감동이 분명 존재하지 않을거라 믿는다. 그래서 안읽는다는건 핑계고 이걸로 족하다.. 귀찮기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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