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숲과 나무 북북

ㅅㅅㅅ.
ㅏㅇㅣㄹ의 ㅣ대
정말 읽고싶었던, 정말 많이 추천 받았던 책. 내가 어릴 적 본 표지와 그 느낌 그대로의 책이다.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읽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릴 적 책에 관심이 없을 때도 이미 유명했던 이 책의 표지와 이 책의 느낌. 정말 읽고 싶었지만 그 땐 글과는 친하질 않아 쉽게 시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무살부터 시작된 독서의 세계에서 드디어 몇년이 지난 오늘 이 책에 대한 마침표를 찍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우연히 <다자키 쓰쿠루‥>를 먼저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상실의 시대>를 먼저 읽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쉽게 들어오고 간단히 손에 잡혀버린 <다자키 쓰쿠루‥>에 먼저 빠져버렸다. 하루키 작가에게 큰 호감을 느끼진 않는다. 그냥.. 내 개인적인 취향이니까. 따스한 커피의 향이 올라온다. 커피가 다됐나보다. 커피 한잔을 옆에 비치 후 한모금으로 글을 시작한다.
올려둔지 삼일 지난 이 로스팅은 배에 무리가 가진 않을까 커피에 대한 상식이 없어 그냥 대충 머금는다.


<상실의 시대>, 이 책을 접하기 전 전 여자친구에게 이 책을 읽어봤냐고 물어봤던 적이 있었다. 그녀도 좀 어릴 적에 읽은 터라 약간 노골적인 성관련 내용이 기억에 남는 책이라며 나에게 일러줬다. 전여자친구가 이 책을 봤을 적은 중고등학생일 때일터라 어떤 성적인 표현도 약간은 순수한 여학생에게 충격으로 와닿았을거라 생각이 들지만 지금의 난 그저 마스터베이션이라던지 손으로 빼주는 표현은 그렇게 큰 충격으로 와닿진 않지만 내용 측면에선 그래도 속으로나마 나름 '음...' 정도의 감탄사 아닌 표현을 하곤 했다.

끊임없는 관계가 이어진다. 대충의 인물을 나열하자면 기즈키, 나오코, 하쓰미, 미도리, 나가사와, 돌격대, 레이코. 중점적인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여자가 대부분이다. 나오코, 하쓰미, 미도리, 레이코.
여담이지만 미도리라는 인물, 이름에 대해서는 중3때 약 반년간 빠졌던 일본 애니메이션 중 <미도리의 나날>이라는 작품을 보며 눈물을 자아냈던 기억이 나 미도리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었지만 가장 어려운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끊임없이 책을 잡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이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도 가방에 꼭 넣고 다녔다. 이걸 다읽기 전까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하리만큼 뭔가 당기는 메세지? 의미가 있던 책이었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마스터베이션에 대한 내용은 미도리와의 나오코의 오묘한 관계에 대한 느낌으로 와닿았다. 특히나 미도리가 자신을 생각하며 해달라고 할때는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지만 슬프기도 했고 무언가.. 좀 이상한 느낌이었다. 섹스를 하지 않는 둘의 관계. 게다가 서로 애인이 있는 미도리와 와타나베. 참으로 희한한 관계였지만 예상가능한 전개였다.
사실 이 책을 읽는데 가장 많이 느낀건 정말 예상이 가는 스토리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예상가는 스토리와는 달리 한페이지한페이지 흥미진진했다. 사실 예상이 가더라도 인물마다 표현되는 감정이라던지 표현까지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큰 숲은 보이지만 나무들은 보이지 않는 그런 전개였던 듯 했다.

사실 나는 기즈키를 비중을 크게 보지 않는다. 나오코와 미도리, 실제로도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표현도 잘됐고 책에서 둘의 얘기가 가장 좋았다.
중간에 나쓰미와 나가사와의 스토리가 난 정말 무언가 중요한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가사와에게, 아니 우리 독자에게 주는 메세지였다. 가장 일반적인 관계가 아닐까? 약간 나쓰미와 와타나베의 한번의 외도를 기대했지만 그럴리 없다는 생각은 아쉽게도 들어맞아 아쉬웠다. 그래도 하나의 단막극으로 끝난 나가사와와 나쓰미였지만 또한 둘도 좋아했다.


이야기가 마무리 되갈수록 나오코는 사라져갈 기미가 느껴졌다. 이건 나 아닌 누구도 예상했던 결말이었기에 굳이 언급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어지는 삼각관계가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약간의 이해도 된다고한다면 나도 그런 고민을 한적이 있나 싶기도 하다. 조금은 꺼내기 힘든 얘기다. 어쨌든 와타나베에게 미도리는 그런 존재였지만 나오코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와타나베가 가진 나오코의 대한 기억,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긴 설명은 하고싶지 않다. 왜냐면 나의 표현력은 똥이니까. 어쨌든 와타나베의 답답함. 이해할 수는 있었어도 한편으로는 불쌍하게도 여겨졌다.


사람들은 짐이 덜어지지 않는 삶을 산다. 삶에서 관계란 그렇다. 하나의 관계라도 그저 버릴 수 없다. 기억의 족쇄로 남아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괴롭힌다. 나 또한 그렇다. 고등학생 시절 너무 가벼운 관계를 많이 한 나로서는 짐이 너무 많다. 지금 또한 많은 그런 생각으로 인해 숲에서 헤메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의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인간관계라는 숲에서 헤메이는 우리를 비아냥대는, 은근히 꼬는(작가가 의도치 않았어도)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점에 속이 상했다. '당했다'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끝까지 놓치 못한 이유와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항상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또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은 진지하고 마음 또한 일편단심이지만 형용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 가지는 사랑의 마음은 정말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어쩌면 가벼워지기도 했지만 짐에 대해 다시금 생각이 들었다. 언제 내 인생의 선배(그냥 나이 많은 사람)가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네가 만난 여자들은 너의 마음의 짐이 되어 다 안고 가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거야, 항상 신중하고 열심히 해"
열심히하나 가볍게 하나 마음의 짐이 되는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짐이 꽤 많은 편이다. 자랑은 아니다. 너무 가슴아픈 일이다.

<상실의 시대> 제목에서 상실의 뜻을 마음에 담고 되뇌이며 슬픔에 빠진다. 사랑은 방황이다. 명제는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방황하고싶지 않지만 사랑하게되면 방황을 겪게되는 듯 하다. 원치 않아도 말이다. 그래도 나는 방황을 위해 방황하고 있다. 가끔은 고독이 그립기도 하다. 전 여자친구와의 3년간의 관계가 나의 고독을 씹어먹어버려 외로움이란 상실로 가득한 생활로 힘든 나는 어쩌면 마음에 맞는 사람을 그저 찾는데에 급급한 걸지도 모른다.
나, 본인 조차도 구밀복검인 태도인지도 모르고 사랑을 시도하려 한다. 사랑은 방황이며 상실이다. 행복하지만 사랑은 상실이다. 삶은 상실이다.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책은 이 두권이면 충분하겠지..? 광팬도 아니고, 나의 책 성향으로는 이정도면 충분하리라 싶다.

p.s 마지막 레이코와 한 섹스는 그냥 인간적으로 약간 부러웠다. 나도 한 열살차이 나는 여성과 한번쯤 해보고 싶긴하다. 내 섹스 가치관은 사랑하는 사람과만의 사랑을 전제하에 한다는 그런 약간은 딱딱한 보수적일 수 있는 태도지만(그래도 남의 섹스관을 욕하거나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레이코 같은 사람과의 섹스도 괜찮을 듯 싶다. 물론 사랑이 전제되있어야 좋겠지?
그리고 미도리와의 관계가 가장 신경쓰인다.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사랑하지만 나오코를 잊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가슴 아픈 모든이의 삶의 굴레.
=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갑자기 친구와 얘기 했던게 생각난다. 아주 성차별적인 대화였다. 얼간이들 마냥.
남자 다섯이 술을 먹는 상황이었다. 그중 카츄사와 나의 대화였다.
"남자들은 쓰레기야. 너네 다 쓰레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넨 다 쓰레기야. 하지만 난 아니지. 난 분명하거든 훗"
"웃기지마 쓰레기야"
"내가 너랑 같냐? 쓰레기야 엿먹어"

참 어이없는 쓰레기들의 대화였다. 스크래치 받지 않을 만큼 친한 우리라 다행이다. 나의 가장 친한친구 카츄사.

덧글

  • 2014/01/02 17: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1/02 20: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