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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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다 부딪힌 여성무리.
무리라고 해봤자 두명의 여성.
한명은 백화점내 옷가게 점장(매니저), 한명은 아르바이트생.
퇴근길 미끄러운 바닥으로 나와의 아주 사소한 옷깃이 스치는 인연의 마찰에 팔짱 끼고 퇴근하는 그녀들을 넘어뜨리게 된다.
둘다 힐을 신고 있었기에 넘어진다면 나름 사소한 사고정도는 있을 것이지만 사소한 사고정도가 났다.
아르바이트생의 발목이 골절된 것이다.
나는 병원까지 따라나서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를 한다. 나름 한밤의 간병을 해주었다. 간병간병맨 간호간호맨. 어릴적 봤던 '리리카SOS' 만화가 생각난다. 뜬금없다.
어쨌든 입원은 안해도 되고 집에서 푹 쉬라는 의사의 말에 아르바이트생의 부모님을 부르기보다 택시를 태워 보내기로 했다. 잠깐 아주 잠깐의 몇시간 안되는 안정을 취하고 그녀를 업고 택시를 잡아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어쨌든 아르바이트생을 집에 보내기까지 셋은 같이 움직였다. 병원에 관한 문제는 뒷전이고 당장 내일의 매장 업무가 걱정된 매니저.
나름 괜찮은 외모의 벅벅, 구두로 커버된 진실된 173cm의 육박하는 키. 작긴해도 커버됐다. 그리고 친절한 간병력. 어쨌든 그 무엇으로 커버됐다.
매니저는 당장 보상이고 뭐고 다음날 업무에 차질이 생길 것을 막기 위해 나를 며칠간 아르바이트로 채용하기로 계약했다.
"벅벅씨가 아르바이트생 일 못하게 했으니 며칠간 우리 매장에서 일좀 해줘야 겠어요"
'이게 뭐야....' 딱 이 상황은 '번개불에 콩구워먹었다.' 라는 표현이 맞는 듯 하다.
내 스케쥴이고 뭐고 다음날 정말 출근하게 됐다. 이게 뭐지? 정식 절차를 거쳐 교육을 받고 그래야 할 백화점내 입점한 여성의류 매장이었지만 백화점 위와 친분이 있는 듯 했다. 무리 없이 하루만에 출근했다. 난 이 상황이 분명 문제가 있는데....
어쨌든 지정된 나름 깔끔한 정장식 유니폼, 을 줬으면 좋겠지만 내가 가진 깔끔한 옷으로 유니폼을 대신한다. 여성의류 매장이라 여성유니폼 밖에 없었기에. 다행인건 여성 속옷은 취급하지 않았다. 휴.
옷장사, 구두집에서 아르바이트 해본 경험이 있기에 백화점에 입점한 그 매니저의 매장에서의 일은 크게 어려움은 없었지만 작은 어려움이 많았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되면 배울게 정말 많지만 우선 매장 내에 어떤 옷들이 있나 체크하고 숙지해야한다.
나름 한가한 오전을 보내고 오후가 되고 손님이 많아졌다. 이제 쯤 쉴 타임이다 싶었지만 고객 한분이 옷을 이리저리 재보며 고민하고 있었다.
이 매장에서 값 꽤 나가는 원피스를 두고 고민하는 고객, 하필이면 내가 맡고 있는 고객. 매니저는 매장 내 옷을 체크하는 일 같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를 신뢰하는건지
친절히 얘기한다.
"고객님 필요한거 있으세요?"
"이걸 사려고하는데 제가 안입던 스타일이라.."
"제가 여기 일한지 하루밖에 안되서 여자 옷은 잘모르지만 피팅이 괜찮으신데요?"
"근데 이렇게 입어보면 맘에 들긴 하는데.. 안입던 스타일의 옷이라 고민되네요"
잠시 3초의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물었다.
"고객님, 패딩은 언제 입는거죠?"
"외출할 때나.. 추운 날에 보통 입죠?"
"저는 집이 워낙 추워서 패딩이 잠옷이랍니다. 잘 때 패딩을 입고 자요. 만약 이 옷을 구매하시고 집에서만 입는 고가의 홈웨어가 된다고 해도 고객님께서 만족하시고 잘 입으신다면 이건 고객님의 옷이 되는거예요. 그렇다면 이 옷은 그만큼 고객님에게 맞는 옷이고 적재적소에 입는 옷이 아니더라도 고객님 옷이 된 그 옷은 언제든지 입게 될 수 있는거죠. 입고 나가 친구분들을 만나도 불편함 없고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요. 만약 고객님이 이 옷을 그렇게 한동안 입고 한동안 옷장에 들어가 그동안 입던 스타일 옷들 사이의 홍일점 처럼 옷장에서 어울리지 못하더라도 그 옷으로 얻은 만족감으로 이제 그 옷은 고객님 옷이 되는거랍니다. 다시 안입는 일도 없을테구요."
길지만 결코 길지 않은 대화, 그런 대화였다. 그리고 결국 고객님은 그 옷을 사가셨다. 그 고객의 소득수준이나 다른 어떤 것도 모르지만 사갔다. 간단한 인사정도의 대화만 하고 그 여성고객분은 그렇게 영수증은 지갑에, 새 옷은 안에 입고, 입고 온 아우터를 걸치고 매장을 나갔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띵까띵까 매니저. 나를 주시하고 있던 것이었다.
"벅벅씨, 우리 매장에서 일 해볼 생각 없어?"
"네?" 라고 말하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벅벅.
"벅벅씨 우리 매장에서 정직원으로 일해. 아르바이트말고"
"저 하루 밖에 안된 아르바이트도 아닌 땜빵인데요..."
그렇게 나는 괜찮은 페이의 백화점 여성의류 매장에서 일하게 됐다.
다리 골절 당한 그 아르바이트생 분에겐 미안해야하는지 고마워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인사를 해야할 것 같았다.
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골절은 아니었기에, 아니 골절이면 입원이지 어쨌든 이상하게 피콜로인지 일주일이면 나을 경미한 골절이라고 들었었다.
그렇게 정직원으로 나흘째
오전은 한가하다. 오늘은 매니저가 점심 때 출근한다고 한다.
가볍고 매우 편해보이는 운동화를 신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한 여성이 매장에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고객님~" 나름 친절한 말투.
'어?', 그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내가 먼저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했어야 하는데 미처 먼저 연락을 못했다. 연락처야 매니저를 통해 얼마든지 알아 낼 수 있었겠지만 뙇! 하고 떠오르는 빅뉴스가 아니었기에, 아니 물론 빅뉴스지만 어쨌든 나는 그동안의 모든 얘기를 해주었다.
다행히도 매니저와 잘 맞지 않아 그만둘 생각이었다고 하면서 나의 미안한 마음을 안심시켰다. 그리곤 덧붙여 얘기해줬다.
"그리고 방학 때 집에서 가족 몰래 하는 아르바이트여서 오래 할 생각두 안했구요. 바로 이 근처 살아서, 일하면서 가족 마주칠 일 없을 것 같아서 오히려 안심이네요. 그러니 벅벅씨에게 이 일이 맞으면 여기서 불편한 생각 마시고 편히 일하세요(^^)"
나는 그녀의 친절함에 반했다. 아니 사실 사소한 마찰, 부딪히는 날 그 며칠전 지나가는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미처 마찰을 피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미 그때 첫 눈에 반한걸지도 모르겠다.
얘기를 마무리 짓고 돌아가겠다는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그녀에게 나는 용기내어 말하기로 결심했다. '번호를 직접 물어보겠다'라고.
"저기.. 유리씨"
"네?"
그때였다. 어떤 강력한 파워를 가진 지구인 고객님이 매장에 들어온 것은.
나는 직감했다.
'호오... 이정도 위압감이라면 엄청난 고객이겠군..재밌겠어'
내가 하루 땜빵 할 때, 원피스를 샀던 그 고객님이었다.
"이봐요! 안어울리잖아욧!!!"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젠장 매니저도 출근안했는데, 아니 그것보다 번호를 마저 따야하는데..
"어... 큰 언니...?"
"어? 유리야. 네가 왜 여깄어? 아니, 다리도 안좋다면서 왜 나와있어?"
"어.. 그게.."
"봐야할 사람이 있다는 곳이 여기였어?"
"어... 응.."
유리씨는 나를 살짝 응시하곤 부끄러운 듯 힐끔 보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 그건 그렇고 이 옷 맘에 안들어요!"
"아냐 이 옷 언니한테 잘어울려, 그리고 집에서 몇번 입었잖아, 벅벅씨한테 그러지말구 그냥 가자.."
실랑이는 자매끼리하곤 돌아갔다. 물론 실랑이래봤자 아주 사소한 실랑이지만.
결국 번호는 못 물어봤다. 하지만 왠지 내일이고 모레고 언젠간 다시 유리씨가 올 것 같은 느낌에, 갓 출근한 매니저와 바통터치를 하고 몸치인 나는 탭댄스를 추며(마음 속으로만) 사내식당으로 맛대가리없는 밥을 맛있게 먹으러 간다. 한동한 휴무는 쓰고싶지 않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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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소설로 끝.
태그 : 소설
덧글
언제쯤 기발한 글을 쓸수 있을까 저는 가끔 생각한답니다.
이상해요~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