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나의 <그 남자 그 여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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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
오늘 저 남자답게!
터프하게!
진짜 씩씩하게!
프로포즈했습니다
이렇게요
너!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
나!
치약은 중간부터 눌러서 안 짜고 꼭 아래쪽부터 짤 거야!
같이 외출할 때
니가 화장하고 옷 입느라 두시간이 걸려도
현관에서 짜증 부리지 않을 거고
니가 주차하는데 십 분씩 걸려도
바보라고 안 놀릴 거야
밥 먹고 난 다음에 티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배를 북북 긁는 것도 안 할거고
설거지 할때는 부엌을
물바다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할거야
A매치 경기 있을 때 니가 청소기를 돌려도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는 안 지를게
대신!
간장 사 오라는 심부름 시키면
그건 경기가 끝나고 갈 거야
말리지 마!
장마철 끈적거릴 때 난 바닥이나 소파에서 혼자 얌전히 잘거고
일요일날 니가 오전 내내 자느라고 밥 안주면
난 알아서 자장면 시켜먹고
그릇은 냄새 안나게 잘싸서 내놓을거야
내가 백화점을 다섯번 돌고서
양말 두켤레만 사더라도
사람 많은데서 싸우거나
나 혼자 집에 먼저오는 일은 없을거야
어느날 갑자기
니가 괜히 결혼했다고 짜증 부리면
나는 도대체 불만이 뭐냐고 큰소리로 묻기보다
니가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을거야
어때? 무섭지?
그러니까 너 까불지말고 나한테 와
저 정말 터프했죠?
내 이런 비굴한 프로포즈에
그녀가 어떻게 대답했냐구요?
반함#그 여자
난 이렇게 대답했어요
좋아 ,그렇다면
난 니가 양말을 뒤집어 벗어놔도
그걸 니 얼굴에 집어던지지는 않을 거야
대신 뒤집힌채로 빨거니까 니가 뒤집어 신어
니가 코앞에 있는 리모컨이 없어졌다고
나보고 찾아달라고 소릴 지르거나
내가 끓인 찌개를 보고
이게 국이냐 개밥이냐고 투덜대더라도
식탁을 통째로 뒤엎지는 않을꺼야
내가 무지 바쁠때!
니가 야구보느라고 미친듯이 울려대는 전화를 외면하더라도
내가 너한테 전화기를 집어던지는 일은 없을거야
니가 냉장고에 전지현 사진을 붙여놓고
나하고 전지현을 이상한 눈으로 번갈아 보더라도!
니 얼굴을 할퀴지는 않을거야
안보이는데만 꼬집지 뭐
그리고 니가 나 몰래 야한 사이트에 가입해서
한달에 만원씩 카드 값으로 빠져 나가는 걸
나한테 들키더라도 식구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들 해서 망신 주지는 않을거야
가끔 밤중에 갑자기 친구들을 집에 우우 데리고 와도
친구들 앞에서 너한테 반말로 화를 내지는 않을 거고
내가 아플락 말락 할 때 니가 먼저 아파 버려서
나는 아플 수 없게 만들더라도
이건 남편이 아니라 웬수라고
자는 니 얼굴을 베개로 확 덮어버려서
숨을 못 쉬게 만드는 일은 없을거야
끝으로 니가 나한테 한 약속 다 못지킨다고 해도
속았다고 징징 울지 않고
최대한 많이 봐줄거야 너도 그럴 거지?
자 그럼 뭐
중요한 건 대충 다 이야기가 된 것 같으니까
그럼 우리 결혼할까?
어때요?
이정도면 우리 아주 잘 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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