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잊었습니다 벅벅


세탁은 아주 간편하다
분류해둔 세탁물을 세탁기에 부어넣고
바로 옆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가미함과 동시에 전원-동작 버튼을 누르고
세탁기 완료 될 때까지 유유자적 자신의 일을 하며 기다리는 일

기다리는 동안 미리 빨아 널어둔 여름옷 가지들을 미리 건조대에서 개어놓는다
숙련된 요리를 하는 동안에도 다른 생각을 하며 스텝바이스텝 넘어가지만
널어진 빨래를 개는 동안에도 다른 생각으로, 잡념으로 가득하게 되어 약간의 공상·잡념에 빠진다

근래 있었던 친구와의 일을 생각하다가 의식의 흐름이 어느새 어머니라는 존재로 마침표
"헉"
소리 내어 놀랐다.


@
나는 기억력이 그렇게 좋은편은 아니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특수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기존치를 넘는 한계점까지 기억력에 도달한다
마치 시험기간 몇주 빠싹 전공서적의 아수라장에서 모든 지식과 정보를 머리 속에 집어넣어 기억 하는 일
순간의 게임을 위해 패턴기억 강화하는 일
그런 정도는 나 또한 겪었고 그렇게 지내왔다.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친한친구들 혹은 가족의 전화번호 그리고 생일까지 외우고 다닌다.
정말 놀랐던 일은 작년 여름에 있던 중학교 동창들과의 술자리
자리에 있던 중학생 시절 좋아했던 친구의 생일, 당시 소개 받았던 후배의 생일과 핸드폰번호를 무의식중에 떠올리게 되어
"너 생일 @월 @일아냐?, 그리고 그때 소개해줬던 친구 번호가.. @@@@-@@@@.....이었지? 생일이랑"
당시 친구들이 너 스토커 아니냐며 나를 놀림 받은 기억이 있지만 그렇게 나의 기억력의 특수성은 이렇게 기억된다.

한때는 소중한 사람들의 번호를 당연히 기억해야 하는거 아니냐며 전화번호부에 있는 친구 번호들을 다 지우고
일일이 번호를 찍어 연락했던 결코 짧지 않던 시간이 있었다(요즘도 번호를 저장하지 않은 경우가 꽤 존재한다).
@


빨래를 개던 나는 순간 사고와 행동이 정지했다.
건조대 앞에 기둥처럼 굳어져 새어나오는 목소리 "어....."
10년이 지나도 기억하는 번호와 생일을 무색하게 만든 머리 속의 하나의 생각
'어머니 번호를 꺼먹었다'

어머니와 헤어진지도 어느새 일년 일개월이 흘렀다.
내가 혼자 살게 된 것도 일년 일개월이 됐고,
보고싶진 않지만 기억하고 싶진 않지만 번호를 까먹은건 스스로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었던 앞자리만 기억하면 되는 번호인데

나름의 트라우마,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이었을까?
그렇게 한동안 기억해내지 못한 번호는 결국 다시금 기억해냈지만
빨래를 개며 혼자 충격받은 사건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어느새 당신을 잊었습니다
나이가 있어 저장되어있지 않은 가족에게는 연락하지 못했던 당신
혹시 당신도 나를 잊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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