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여녀



혼자 살다보면 설거지를 생각보다 많이 하게 되고 생각보다 자주 쌓인다.
혼자 산다고 라면이나 고추장, 간장 같은 것들에 밥 비벼먹는걸 궁상이라고 생각해 거의 요리를 해먹는 편이다.
집에 라면은 해장용으로 하나만 구비해둔다, 햇반은 밥 양이 애매 할 때 뎁혀서 기존 밥솥에 섞어넣거나


친구를 며칠 재웠다. 한두번보다 더 많이 며칠 재웠었다.
그 친구는 내 요리에 보답을 하기 위해 설거지는 자기가 하겠다고 자청했고 호주에서 쉐프에게 배운 명품 설거지를 보여주겠다며 레스토랑에서 한 일이 설거지 밖에 없다는 듯 자랑하며 얘기했다.

친구의 빠른 설거지 솜씨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이렇게 설거지가 빨라??" 놀랐던 이유는 빠른 설거지엔 꼼꼼함과 세셈함이 떨어지기 때문, 같은 말인가

설거지를 천천히 꼼꼼히 해야지 라는 내 말에 레스토랑에서 설거지 경험자인 친구는 얘기했다.
"나정도 되면 빠르고 꼼꼼히 꺠끗하게,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지"
나도 얘기했다.

"지랄마"


나도 설거지를 그렇게 꼼꼼히 하지 못하던 편이었는데
한 때, 여자친구와 퇴근 후 항상 집에서 밥을 해먹던 시절이 있었다.
요리는 거의 내가 다 했지만 항상 옆에서 거들어준다며 옆에서 귀엽도록 서성였다. 너무나도 귀여웠다.
나보다 7살 많은 여자친구였는데도 그렇게 귀여웠을까

요리를 대게 내가 하는 경우가 많아 설거지를 하겠다는 여자친구의 의지에도 모두 해주고 싶은 남자친구의 마음으로 설거지까지 내가 도맡아 했다. 퇴근 후 피곤해 서로 피곤한 처지지만 그래도 내 여자친구가 더 쉬었으면 좋겠다, 그 시간에 샤워를 하고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같이 요리를 하게 된 어느 날이었다.
설거지가 꼼꼼히 되지 않았다는 여자친구의 말, 생각보다 내 설거지 스킬이 좋지 않았나보다.
그 이후로 설거지는 여자친구의 영역이 되었고 그녀의 옆에서 설거지를 '거드는' 역할인 나.

설거지를 하면서 언젠가 그녀는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인데 신경 써서 설거지 해야지"
속으로 내 하찮은 설거지 스킬을 한탄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혼자 있으면 집에서 밥도 안해먹으면서 설거지는 언제 그렇게 했던거지...?'

그 궁금증은 얼마 가지않아 풀렸다. 여자친구의 학창시절, 식기 당번일 때 완벽히 깨끗히 하지 못해 혼난 적이 있었다는 얘기
물론 그 트라우마만이 설거지를 깨끗히 더 꼼꼼히하는 이유가 되진 않지만 확실한건 그녀는 일은 똑부러지게 빠릿빠릿하게 잘해도 설거지 만큼은 천천히 느긋하게 꼼꼼하게 잘 한다는 것.



그녀와 헤어진 이후 혼자 설거지를 할 때면 항상 그녀가 생각난다.
혼자 살게 된 것도 그녀와의 이별 직후였고 나는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게 되면 항상 꼼꼼히 하게됐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내가 해서 나만 먹는 음식을 하더라도 설거지를 대충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거지를 할 때면 항상 그 때를 생각하며 노래를 틀어놓고 느긋히 설거지를 한다. 빡빡, 뽀드득뽀드득
그렇게 설거지를 할 때면 항상 그녀가 생각난다.
헤어진지 1년도 더 된 그녀와의 이야기.


p.s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의 기본적인 지식, 깨알 팁을 그녀에게 많이 배우기도 배웠다. 다만 요리를 내가 더 잘했을 뿐.
그리고 내가 더 많이 그녀를 좋아했던 것.

덧글

  • 해피사자 2015/11/20 08:38 # 답글

    넵. 설거지는 빡세게 뽀독뽀독뽀도독 소리가 날 때까지 해얍죠.ㅎㅎ
  • 벅벅 2015/11/20 14:24 #

    뽀독뽀독!
    우리 입으로 들어갈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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