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던 어느 겨울 날 감정


그녀를 만난건 지난 겨울이 오기전, 눈의 무게를 못이겨 떨어지는 것보다 빠르게, 눈이 오기전 낙엽이 질 때였다.

차디찬 겨울이 다가오지만 매년 시린 옆구리를 채워줄 사람이 없던, 늘 그렇듯 그런 겨울이 되기 전 무수한 낙엽이 날리던 어느 날
조별과제의 팀도, 미팅에서 만난 인연의 불특정 다수의 한명 또한 아니었던, 그저 같은 학교의 같은 과 동생이었던 그녀.

더이상 인연 만드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 굳이 공부 이외에 것에 관심을 주고 있지 않았던 때,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그런 어떠한 특별한 감정을 담아 다가와 물음을 던진건 아니지만 이내 그녀의 학구열에 특별한 감정 없이 돌려주었다.
그게 그녀와의 첫 단추였다.

그 이후부터였다, 그녀와 핑계 아닌 핑계로 공부를 같이 하기 위해 자주 만났다. 물론 공부라기보단 가르쳐주는 일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가르쳐주는 것은 두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결코 시간낭비라 여기지 않고 만나 공부를 하다보니 어느새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를 치우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겐 벚꽃이 흩날리지 않더라도 새하얀 눈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비바람에 낙엽지는 가을은 지나가고 핑크빛 겨울이 다가왔다. 그동안의 시린 옆구리를 두꺼운 전공책으로 가려 막는 겨울은 사라졌고 새로운 계절이 다가왔다. 그렇게 핑크빛 겨울이 다가왔다.
사랑에 나이는 전혀 중요치 않을 뿐더러 고백에 손해보는 장사 없다지, 그렇게 어렵지 않게 고백을 했다, 솔직한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고 이내 그녀도 뜻을 알아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사이가 됐다.
그녀에게 통금이 있어 매일 함께하거나 아무리 CC라도 일주일에 7일을 보거나 그러진 못했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보내고 그 시간들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상상했다.
친구들과 제주도를 놀러갔을 땐 그녀와 함께 드라이브 그리고 내륙에서 가지지 못하는 둘만의 시간을 꿈꾸고
친구들과 간 스키장에선 그녀와 함께 즐겁게 스포츠를, 그리곤 스파에서 시원하게 몸을 푸는 시간을 꿈꾸고
새해에 친구들과 첫 해를 바라 볼 땐 언젠가 해돋이를 같이 보는 일과 이 모든 일들을 함께 하는 것을 꿈꿨다.

새해에 해돋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행위는 마치 점이나 타로카드 보는 것만큼이나 쓸데없는 미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시간을 꿈꾸게 만들었다. 여자친구라는 존재는 그정도로 사람을 바꿔놓기에 충분했으니까


그 겨울, 스키장도 제주도도 다녀오고 첫 해돋이도 친구들과 모두 경험하게 했었다.
친구들과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그 모든 시간을 그녀와 함께하는걸 구체적으로까지 꿈 꿨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그 시간 그녀는 외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남는 시간은 그녀와 함께가 아닌 그간 놓친 학업과 빠듯한 잔고에 치여 단기알바에 몰두되어 있었다.
자연스레 여자친구는 나의 0순위가 아닌 1순위도 고사하고 2~3순위로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너무 꿈만 꿔왔던 걸까, 그녀를 이해할 시간이 부족했다. 아니 오히려 그녀를 정말 외롭게 만들었던걸지도



그렇게 친구들의 단톡방에 가볍게 얘기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러웠던 헤어짐은 되려 무덤덤하게 느껴졌다.
혼자하는 사랑을 했던것 같다.
그렇게 혼자 꿈을 꿨던것 같다.
그저 일장춘몽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늘 같은 겨울을 또 보내게 됐다.
그렇게 같은 봄을 맞이 하겠지, 그렇게 봄엔 눈과 같은 벚꽃이 만개하고 떨어지겠지
나는 아무 상관 없이 겨울은 지나가고 봄은 다가오고 벚꽃은 지고 여름이 또 다가오겠지
나는 그렇게 길이 터있는 곳으로 흘러가는 강물과 같이 시간 또한 흘러가겠지


덧글

댓글 입력 영역